한국섭식장애정보

아이도 중요하지만, 가족 역시 마찬가지로 소중해요.

가족은 자주 죄책감, 분노, 피로, 무력감 사이를 오갑니다.

“괜찮아지는 것 같다가 왜 또 저러지?”
“우리가 뭘 잘못했기에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 거지?”
“우린 정말 최선을 다했는데, 도대체 왜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걸까?”
“나는 그동안 너무 많은 걸 참고 포기했는데,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
“가족이 이렇게 힘든 걸 보면서도, 저 아이는 왜 저렇게 행동할까?” “대화를 해보려 했는데 또 싸움이 됐다. 우리 사이에 진짜 대화가 가능하긴 할까?”

이런 감정이 든다고 해서 당신이 나쁜 사람인 것은 아닙니다. 자격 없는 부모인 것도, 문제 있는 가족인 것도 아닙니다. 아이를 사랑하고, 아이의 고통에 마음이 무너지고, 이 상황을 어떻게든 해결하고 싶어 가능한 모든 것을 찾고 시도해왔기 때문에 지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돕는 일은 가족에게도 어렵고 고통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가족은 자신의 삶을 전부 섭식장애에 내어주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무관심하거나 냉정하거나 이기적인 태도가 아닙니다.

첫째, 가족과 당사자가 병을 중심으로 너무 깊이 얽히면 서로를 더 힘들게 할 수 있습니다. 가족의 하루가 아이의 식사, 체중, 구토, 기분 변화, 치료 일정만을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하면, 당사자도 가족도 숨 쉴 공간을 잃게 됩니다.

특히 아동·청소년의 섭식장애는 부모와의 관계, 독립성, 자기 결정권, 가족 안에서의 목소리와 깊이 얽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때 가족이 식사 문제에 완전히 매몰되면, 정작 가족 안에서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지, 아이가 어떤 방식으로 더 건강하게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지 보이지 않게 됩니다. 밥상머리 전쟁이 가족 전체를 삼켜버리는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둘째, 가족은 회복 과정에서 가장 가까운 지원자이기 때문에 더더욱 소진되지 않아야 합니다. 끝까지 곁에 있으려면 가족에게도 친구, 일, 취미, 휴식, 즐거운 활동, 섭식장애를 생각하지 않고 보낼 시간이 필요합니다.

때로는 당사자를 돕는 일보다 가족 자신의 시간을 지키는 일이 더 나은 선택일 수 있습니다. 모든 순간 당사자 곁을 지키고 있어야만 좋은 가족인 것은 아닙니다. 무너지지 않고 사랑과 힘을 유지한 채 오래 곁에 있기 위해서는, 가족도 자신의 생활을 회복해야 합니다.

형제자매의 어려움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섭식장애를 겪는 사람이 가족 안에 있을 때, 형제자매는 쉽게 뒤로 밀려납니다. 특히 자매나 쌍둥이의 경우 몸, 음식, 비교, 질투, 죄책감, 두려움이 더 복잡하게 얽힐 수 있습니다. 남자 형제도 영향을 받습니다. 당사자를 걱정하면서도 화가 나고, 부끄럽고, 외롭고, 부모의 관심을 빼앗겼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형제자매가 이런 감정을 느낀다고 해서 냉정하거나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들도 보호받아야 할 가족 구성원입니다. 부모는 때때로 당사자가 아닌 형제자매와 따로 시간을 보내고, 그들의 생활과 감정도 중요하다는 것을 분명히 말해주어야 합니다.

가족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희생만이 아닙니다. 더 오래 함께 있기 위한 상냥함, 서로의 부족함에 대한 너그러움과 유머, 그리고 담담히 계속하는 마음입니다.

가족모임, 상담, 형제자매를 위한 안전한 대화 공간은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가족도 섭식장애와 무관한 삶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당사자에게도 “이 병이 우리 가족 전체를 삼키지는 않는다”는 감각을 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