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에 대한 양가감정
섭식장애에서 회복된다는 것은, 자신을 옥죄었지만 동시에 보호해주기도 했던 갑옷을 벗는 일과 비슷합니다. 그래서 회복은 당사자가 간절히 바라는 일이면서도, 동시에 몹시 두려운 일일 수 있습니다. 가까운 사람들의 함께 있음과 도움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섭식장애를 겪는 사람은 고통과 갈등과 절망에서 벗어나고 싶어 합니다. 자신도 가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회복을 두려워할 수 있습니다. 나아지고 싶지만, 증상을 놓아버린다는 것은 공포스러운 일입니다. 누군가 손을 내밀어주기를 바라면서도, 막상 누군가가 개입하면 통제당한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섭식장애를 겪고 있거나 겪었던 사람이라면, 이 양가감정을 모르기 어렵습니다. 섭식장애에서 먹거나 먹지 않는 일은 단순히 허기를 채우는 일이나 식사습관의 문제가 아닙니다. 공포, 강박, 수치심, 통제감과 연결되어 있고, 자기 몸과 자아와 정체성에 큰 파장을 일으키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회복은 설득만으로 이루어지기 어렵습니다. “괜찮아, 먹어도 돼”라는 말을 듣는 것만으로 공포가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이러다 위험해질 수 있다”는 말조차 당사자에게는 충분한 동기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먹는 일, 혹은 먹은 것을 토해내지 않고 소화시키는 일이 죽음만큼이나 공포스럽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불안장애나 강박장애에서 두려운 상황을 조금씩 마주하는 노출치료(exposure therapy)가 중요한 것처럼, 섭식장애에서도 먹는 일과 식사 후의 불안을 실제로 견디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그 중요한 연습 중 하나가 식사치료입니다.
식사치료는 억지로 먹이는 일이 아닙니다. 당사자를 감시하거나 평가하는 일도 아닙니다. 평범한 1인분의 식사를 시도해볼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하고, 메뉴와 양에 대해 단호하지만 부드러운 태도로 함께 논의하고, 힘들어도 가능한 한 정량을 다 먹을 수 있도록 곁에서 지지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식사 중과 식사 후에 올라오는 불안, 죄책감, 구토 충동, 과운동 충동이 지나갈 때까지 함께 있어주는 일입니다.
이렇게 말해볼 수 있습니다.
“무섭다는 거 알아. 그래도 오늘은 여기까지 같이 해보자.”
“감시하려고 여기 있는 게 아니야. 혼자 견디는 게 힘들 수 있으니까, 먹는 동안 같이 있어주려는 거야.”
“먹고 나서 불안이 올라오면 말해줘. 바로 해결하지 못해도 괜찮아. 같이 10분만 있어보자.”
“수저를 내려놓고 당장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걸 알아. 그래도 조금만 더 같이 있어보자.”
“힘들었지만, 그래도 네가 한 숟가락을 스스로 떠 먹었어. 그 두려운 일을 해낸 거야.”
중요한 것은 강요가 아닙니다. 하지만 회피를 계속 허용하는 것도 아닙니다.
당사자가 지금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그 이상은 전혀 시도하지 않는다면 회복은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습니다. 회복은 지금보다 조금 더 어려운 일을, 신뢰할 수 있는 사람과 안전한 환경에서 다시 시도해보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그 시도를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반복하는 일입니다.
가족과 주변 사람의 역할은 당사자를 몰아붙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 작은 도전이 가능하도록 끝까지 곁에 남아주는 일입니다.
식사를 회복하고, 식사 후의 불안을 견디고, 구토나 과운동 같은 증상 행동으로 도망치지 않는 시간을 조금씩 늘려가는 것. 그것이 회복을 향한 실제 연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