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이 싫어하니 좀 더 지켜보자”가 위험한 경우
섭식장애를 겪는 사람은 독립성과 주도성을 인정받는 환경에서 더 잘 회복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떤 상황에서든 기다려주는 것만이 최선은 아닙니다.
섭식장애를 겪는 사람은 자신의 상태가 위험하다는 것을 인정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도움을 받고 싶으면서도 두렵고, 회복하고 싶으면서도 증상이 만들어낸 익숙한 보호막을 놓는 것이 무서울 수 있습니다. 가족의 개입이 필요하면서도, 그 개입을 통제로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가족은 자주 어려운 자리에 놓입니다. 당사자의 두려움과 독립성을 존중하고 싶지만, 건강이 빠르게 악화되고 일상이 무너지는 것을 그대로 둘 수는 없습니다.
특히 다음과 같은 경우에는 갈등이 두려워 멈칫하기보다, 용기를 내어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합니다.
● 빠른 체중 감소
● 걷거나 계단을 오르는 것조차 힘겨워하는 상태, 실신, 심한 현기증
● 반복적 구토, 변비약 남용
● 음식 섭취가 거의 불가능한 상태
●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종류와 양이 점점 줄어드는 상태
● 정상 식사 대신 특정 음식만 반복해서 먹는 상태
● 과도한 운동 루틴을 포기하지 못하는 상태
● 무월경, 호흡곤란, 가슴통증
● 자해나 자살 위험
● 아동·청소년이 문제를 강하게 부정하지만 학교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심신의 건강이 악화되는 경우
● 장애나 기저질환이 있어 영양 부족이 욕창, 감염, 체력 저하 같은 문제와 맞물리는 경우
이런 상황에서는 당사자가 화를 내더라도 가족이 완전히 물러설 수 없습니다. 다만 적극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말이 당사자를 차갑게 몰아붙이거나 강압적으로 대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부모와 가족에게 필요한 것은 걱정을 숨기지 않는 태도입니다. 동시에 당사자의 두려움과 수치심을 무시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너 왜 이러니”라고 추궁하기보다, “나는 지금 네 건강이 걱정된다”고 말해야 합니다. “네가 틀렸다”고 몰아붙이기보다, “이 상태를 계속 두는 것은 안전하지 않다”고 말해야 합니다.
단호함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단호함은 협박이나 경멸, 무시와 다릅니다.
가족은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네가 싫어하는 걸 알아. 무섭고 화가 날 수도 있다는 것도 알아. 하지만 지금 네가 위험해지는 걸 그냥 보고 있을 수는 없어.”
“너를 벌주려는 게 아니야. 하지만 이 상태를 계속 유지하게 둘 수는 없어.”
“네가 무섭고 화나는 것도 이해해. 그래도 지금은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야.”
“우리가 집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단계라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해.”
“네 말을 듣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야. 우리는 네 얘기를 들을 거야. 다만 지금 응급 상황이라면, 먼저 네 건강을 보살핀 다음 계속 이야기해야 해. 우리는 널 사랑하고, 네 편이야.”
위험을 외면하지 마십시오. 하지만 위험을 이유로 당사자의 두려움과 존엄을 무시해서도 안 됩니다.